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Agreement, 트립스 협정)을 관장하는 세계무역기구의 이사회가 트립스 이사회다. 올해 회의는 10월 15-16일 열리는데, 이 회의에서 트립스 협정의 일부 조항의 적용을 유예하는 결정을 내리자는 제안이 나왔다(문서명: IP/C/W/669).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공동으로 제안한 결정문 초안은 코로나 19가 초래한 사회경제적 위기는 트립스 협정 유예를 정당화할 상황으로 본다. 이들이 유예를 주장하는 트립스 협정 상의 의무는 제2부의 제1, 4, 5, 7절과 이 조항들과 관련된 제3부의 지재권 집행에 관한 조항들이다(실연자와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 보호를 위한 제14조는 제외). 제2부 제1절은 저작권, 제4절은 산업 디자인, 제5절은 특허, 제7절은 미공개정보에 관한 조항이므로, 사실상 코로나19 대응 보건 기술과 관련된 실체적 권리를 모두 아우른다. 유예기간은 정하지 않았고 1년 이내에 이사회에서 재검토하도록 했다.
코로나19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해결되어야 비로소 종식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 해결에 장벽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 지적재산권이 장벽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이를 유예하자는 제안은 상식에 맞다. 트립스 협정을 유예한다고 갑자기 코로나19 치료제에 특허를 주지 않거나 이미 부여된 특허권을 뺏지도 않는다. 트립스 협정은 조약이므로 국가의 국제법상의 의무에 영향을 줄 뿐이다. 따라서 가령 독일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제도를 개선했는데, 개선된 제도에 따라 강제실시를 발동했을 때 다른 나라가 트립스 위반이라고 독일을 상대로 분쟁을 제기하지 못할 뿐이다. 물론 인도나 남아공이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에 특허를 주지 않을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인도나 남아공 국내로 그치고 그것도 강제실시에 비해 크게 차이가 없으며(보상금에만 차이가 있다), 유예도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위기상황에만 적용되는 한시적인 조치이다.
요컨대, 인도와 남아공의 제안은 코로나19 진단, 치료, 백신에 특허를 주지 말자는 MSF의 캠페인이나 코로나19 대유행의 종식과 질병의 영향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모든 특허, 저작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의 자발적 이용허락을 하자는 Open COVID Pledge에 비하면 보수적인 제안이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 총회나 유엔 총회 연설에서 백신과 치료제를 공공재로 하자는 제안에 더 가깝다. 대통령의 제안을 특허청이나 외교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번 인도와 남아공의 제안에 반기를 들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