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도 몰랐고 이재명도 모르는 진보를 위한 지적재산 정책

지방자치단체는 “지식재산 기본계획”이란 걸 만들어 정책으로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책에 지자체의 자율성은 없다. 법이 정한 대로 따라야 한다. 지식을 사유화하고 독점하며, 심지어 공공연구 성과도 사유화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바로 ‘지식재산기본법’ 때문이다.

이런 내용의 지식재산 기본계획을 받아들고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진보라 할 수 없다. 박원순 전 시장도, 이재명 도지사도 그런 점에서는 진보의 자질이 부족하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시장 중심의 지재권 정책을 그대로 펼친다는 점에서 보수와 다를 바 없다. 2018년 대한변리사회 회장을 만난 박원순 전 시장은 “지식재산이야 말로 미래 우리의 먹거리라며 서울시의 지식재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대한변리사회 뉴스) 이재명 지사도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막자는 맥락에서 한 발언이긴 하지만 “4차산업 시대 지식재산 기반의 선진경제시스템 실현”이라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쓰고 있다(오마이뉴스 기사).

‘지식재산이 우리의 미래’라는 논리는 지식재산기본법을 추진하던 세력이 만든 시장 논리다. ‘지식’이 우리의 미래라는 말과 ‘지식재산’이 우리의 미래라는 말은 정반대다. 공유재인 지식과 달리 지식재산은 사유재다. 누군가 사적으로 유용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으로 독점한 것이 지식재산이다. 이를 제도화하고 내면화하며 변경불가능할 정도로 구조화하는 법률이 지식재산기본법이다. 지식재산기본법은 지식의 공공성·사회성·역사성이 아니라, 지식의 독점·상업화·사유화를 위해 국가 총동원령을 내렸다. 국가와 지방단체,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사업자도 지식재산의 창출·보호·활용을 위해 전념해야 하고, 정부는 지식재산 친화적 사회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유럽의 대표적인 지재권 법학자인 가이거(Christophe Geiger) 교수는 2019년 논문에서 지재권의 정당성이 그 어느 때보다 공격받는 시대라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지재권은 정당성을 확보한 정도가 아니라 도그마의 반열에 올랐다. 이성적 비판은 허용되지 않으며 지재권 강화를 무조건 믿어야 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다. 지식의 독점과 상업화가 우리 사회 모든 분야로 퍼져나가도 진보 지식인이나 정치인의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방적인 지재권 강화 일변도의 정책이 아무런 저항없이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까지 무혈입성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지재권 최대주의(IP Maximalism)’ 또는 ‘지재권 교조주의’(IP Dogmatism)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된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지식 경제에 대한 시장편향적 담론의 득세와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지재권 전문가 집단 때문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생산요소인 노동과 자본을 지식이 대체하면서 지식과 정보가 부의 원천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항상 인용하는 수치가 바로 S&P500 기업가치다. 1975년 무형자산 비중이 17%였던 것이 2015년에는 84%로 급증했고 무형자산의 핵심이 지적재산이라고 한다. 박원순 전 시장이 비판없이 되읊었던 ‘지식재산이 우리의 미래’라는 구호는 바로 여기서 나왔다. 

지재권 교조주의가 득세한 두 번째 이유는 장기간에 걸친 미국의 통상 압력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통상압력이 수십 년 지속하면서 미국의 통상관료를 통해 왜곡된 지재권 제도가 강요되었다. 그 과정에서 제도의 수입과 함께 이념의 수입이 동반되었고 우리 사회에 지재권 최대주의로 이득을 보는 새로운 집단이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다국적 기업들이 지재권 최대주의를 밀어붙였지만 한국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집단은 행정기관(대표적으로 특허청)과 법률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직이나 직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지재권 정책을 제도화하고 구조화한다. 경제학자 ‘아담 제피’와 ‘조쉬 러너’는 특허제도의 개혁이 어려운 원인으로 ‘경제적 이해관계가 가장 큰 특허권자들의 강력한 로비’를 꼽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특허제도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특허청과 변리사들이다. 이들은 지재권 최대주의를 구조화하는 법률인 ‘지식재산기본법’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입한 집단이기도 하다.

 

진보적 해법을 모색하며

 

지식경제에서 무형자산의 가치가 중요해졌다고 하더라도 지적재산 제도를 통한 지식과 기술의 독점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는 위험하다. 마치 냉전시대 미소간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위험과 같다. 군비경쟁의 승자가 군수산업계였던 것처럼, 지식 독점의 쟁탈전에서 승자는 지재권 교조주의를 퍼트리는 지재권 전문가 집단이다(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에서 이들을 대리했던 변호사들이 승자였던 것처럼).

따라서 진보적 해법은 특정 집단이 집단이기주의로 지재권 강화 정책을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걸음은 특허청을 해체하고 조직을 새로 짜는 것이다. 특허청은 원래 누군가 기술 독점을 하려고 특허권을 국가에 신청했을 때 독점의 자격이 되는지 심사하려고 만든 행정기관이다. 그런데 특허청을 특허권자가 내는 수수료로 먹고사는 조직으로 만들면서 특허청은 특허권 강화와 지재권 최대주의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특허청처럼 노골적으로 특허권자 편을 들고, 소위 ‘특허 장사’를 하는 곳도 없다. 특허청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지재권 최대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 토론과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다. 

진보적 해법의 핵심은 2가지다. 공유지식의 확대게임 규칙의 변경

먼저, 공유지식의 확대다. 지재권 제도는 독점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식이나 기술이 생산되지 않는 일종의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제도다. 지재권 제도가 있어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도로 지식과 기술이 생산되는 영역이 있을 수 있다. 바로 공유지의 비극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공공이 할 일은 공유지의 비극을 법칙화하고 비극이 생기는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다. 공유지의 비극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공정책의 지향점을 잡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다. 이는 공유지식의 확대를 통해 가능하다. 공공지식과 상아탑 지식은 공유지식의 대표적인 후보군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거나 공공연구기관이 수행한 연구 결과물을 지재권을 통해 독점하지 않고 공유지식으로 푸는 원칙을 세우야 한다. 대학에서 나온 지식도 상업화가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유자원화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지재권 정책은 위험한 역주행을 너무 오래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공공기관은 자신들이 만든 지식이나 연구성과를 공유재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재권으로 독점화한 다음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의무가 되어 버렸다. 대학교수들도 연구성과를 특허권으로 독점하면 할수록 더 많은 연구실적으로 인정받는다. 지식재산기본법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기본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들이 이를 제도화한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공유지식을 없애 나가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새로운 먹거리가 아니라 사유지의 비극이 초래한 굶주림에 직면할 것이다. 만약 어느 사회의 모든 지식과 정보, 기술을 사유화하면 그 사회는 망한다.

진보적 해법의 2번째로 제시한 게임 규칙의 변경은 지식과 정보, 기술 둘러싼 독점 경쟁의 완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말한다. 이를 위해 지재권 제도의 타파까지는 아니어도, 지재권 제도와 정책에 분배정의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고 무너진 균형의 회복을 말할 수 있어야 진보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지재권 제도는 권리 보장만이 아니라 지식과 기술의 사회적 이용과의 균형달성을 통해 비로소 제도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 특허법은 발명의 보호와 이용 사이의 균형을, 저작권법은 창작물의 보호와 이용 간의 균형을 축으로 한다(두 법의 제1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런 균형은 지식재산기본법에 와서 모두 무너졌다. 지식과 기술의 이용과 분배정의는 지식재산기본법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독점 지식의 창출, 보호, 활용이란 극단적 성장담론이 전부다. 

균형이 무너진 제도는 균형감각을 상실한 인재를 만든다. 인간의 이기심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국가가 만든 제도의 결과물이라 하지 않는가.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나누지 않고 독점할 때 성과를 인정받는 제도를 계속 유지하면 우리 사회는 이기적 개인들의 끝없는 싸움터가 된다. 이런 식으로는 창의성 있는 인재를 기대할 수 없다. 창의성 분야의 선구적 학자인 소여(Sawyer)는 창의성 개념 자체가 개인 중심에서 협동성과 사회문화적 성격의 개념으로 전환되었음을 밝혔다. 초지능과 초연결을 특징으로 하는 소위 ‘4차 산업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자신이 만든 기술을 독점하고 울타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나누고 협동하는 ‘초협력’을 내재화한 인재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뉴딜도 초협력 인재를 통해 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지재권 정책이 만든 결과는 코로나19 위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공유지식의 확대와 연구자들의 협력 방식을 제안했다. 민간 영역에서도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기술의 자발적 공유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Open COVID Pledge).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글로벌 IT 기업들은 모두 참여했고, 일본 기업들만 75개 이상이 여기에 동참했다. 미국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MIT도 자신이 가진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자신들의 기술을 가져다 쓴 결과물은 최대한 널리 공급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수십 개 대학들이 여기도 동참하면서 규모가 커졌지만, 한국 대학의 참여는 없다. 앞에서 말한 세계보건기구의 협력 방식은 물론 자발적 기술 공유에 한국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한국의 공공연구기관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한국화학연구원을 비롯한 공공연구기관들은 코로나19 백신, 치료, 진단 기술을 모두 민간에 팔아 넘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 총회 연설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백신과 치료제를 글로벌 공공재로 하자는 제안이 공수표가 되지 않으려면 청와대가 나서 지재권 제도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