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건강보험정책을 지지하는 판결(올란지판 특허 분쟁 사건)

올란자핀 특허 분쟁 사건에서 대법원은 약가인하로 인한 후발 제약사(한미약품과 명인제약)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진입으로 약가가 인하된 경우 제네릭 제약사는 특허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외에 약가 인하로 인한 손실까지 배상할 책임이 있는지를 다룬 것으로, 제네릭 출시 시점의 분수령이 될 사건이었다. 지식연구소 공방은 다른 시민사회단체 4곳, 해외 전문가 2명과 함께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우리 의견서의 주장대로 후발 의약품의 시장경쟁이 아니라 행정기관이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취한 약가 조정으로 인해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후발 제약사에게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 한미약품 사건(2016다26707), 명인제약 사건(2018다221676)

대법원 판단: 약가인하로 인한 후발 제약사의 책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려면 위법한 행위와 피해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일반적인 결과발생의 개연성은 물론 주의의무를 부과하는 법령 기타 행동규범의 목적과 보호법익, 가해행위의 태양 및 피침해이익의 성질 및 피해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 ··· 원고가 약제급여목록표에 등재된 원고 제품의 상한금액에 관하여 가지는 이익은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정한 약제 상한금액 조정사유가 있는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의 적법한 조정에 따라 변동될 수도 있는 이익이다.

··· ··· 피고는 원래 피고 제품을 이 사건 특허발명의 특허권 존속기간 만료 후 요양급여대상 약제로 판매하고자 이 사건 요양급여대상 결정신청을 하여 피고 제품이 약제급여목록표에 등재·고시되었고, 이는 관련 규정에 따른 것으로서 피고의 이 사건 요양급여대상 결정신청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 ··· ···  피고는 특허법원이 진보성을 부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자 이를 근거로 관련 규정에서 원고 제품의 특허권에도 불구하고 피고 제품을 약제급여목록표 등재 후 즉시 요양급여대상 약제로 판매할 수 있는 사유로 예시한 ‘특허분쟁의 승소가능성 등’을 소명하여 이 사건 판매예정시기 변경신청을 한 것으로, 이러한 피고의 행위를 위법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 ···  피고의 이 사건 판매예정시기 변경신청은 원고 제품의 상한금액을 인하해 달라는 약제 상한금액 조정신청이 아니고, 제네릭 의약품인 피고 제품의 상한금액은 관련 규정에 따라 최초등재제품인 원고 제품 상한금액의 일정 비율로 정해지므로, 피고가 원고에게 원고 제품의 상한금액 인하라는 손해를 가할 의도로 이 사건 판매예정시기 변경신청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 ··· 

피고가 제네릭 의약품인 피고 제품에 관하여 이 사건 요양급여대상 결정신청과 이 사건 판매예정시기 변경신청을 한 이후 보건복지부장관이 이 사건 고시로써 원고 제품의 상한금액 인하 시행시기를 변경하여 원고가 원고 제품의 상한굼액 인하라는 불이익을 입게 된 측면은 있다. 그렇지만 피고의 신청행위를 위법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보건복지부장관의 이 사건 고시를 위법한 처분이라고 볼만한 자료도 없는 점, 관련 규정의 취지가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화하여 원활한 요양급여를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데에 있다는 점과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공익적 성격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원고의 불이익은 제네릭 의약품의 요양급여대상 결정신청이 있으면 보건복지부장관이 최초등재제품의 상한금액을 인하할 수 있고, 최초등재제품 특허의 무효가능성이 소명되면 제네릭 의약품을 약제급여목록표 등재 후 즉시 요양급여대상 약제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관련 제도를 채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결국 원고가 원고 제품의 상한금액에 관하여 갖는 이익은 이러한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보호될 수 있는 것에 불과하고, 그 제도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결과가 원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더라도 이를 피고의 책임으로 돌릴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단: 한국릴리를 독점적 통상실시권자로 볼 수 있는지

“특허권자인 릴리 리미티드가 원고에 대하여 원고 외의 제 3자에게 이 사건 특허발명의 특허권에 대한 통상실시권을 부여하지 않을 부작위 의무 를 부담하기로 약정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가 원고 제품에 관한 수입품목허가를 받고 이를 국내에서 수입·판매할 수 있었던 근거는 릴리 컴퍼니와 체결한 공급유통 기본계약 제 2.4조(Section 2.4)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위 공급유통 기본계약은 이 사건 특허발명의 특허권에 대한 실시허락계약이 아니다. 릴리 리미티드에게 특허 실시에 관함 대가인 실시료를 지급한 주체는 원고가 아니라 일라이 릴리 에스에이 (Eli Lilly S.A.)이고 실시료율이나 실시료 액수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도 없어, 릴리 리미티드가 원고에 대하여 위와 같은 부작위 의무를 부담하는 대가로 원고로부터 높은 실시료를 받아왔다고 보기도 어렵다. 릴리 리미티드가 원고에 대하여 원고 외의 제 3자에게 통상실시권을 부여하지 않을 부작위 의무까지 부담할 사정을 찾기 어렵다.

특허권자 릴리 리미티드가 원고에 대하여 원고 외의 제 3자에게 통상실시권을 부여하지 않을 부작위 의무를 부담하기로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약정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원고를 이 사건 특허발명의 독점적 통상실시권자로 볼 수는 없다.”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의 우리 주장

약가 인하로 인한 책임을 후발 제약사에게 물릴 수 있는지

이 사건 특허를 둘러싼 분쟁이 전 세계에서 벌어졌지만, 올란자핀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후발 제약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 판결례는 의견제출인들이 아는한 아직까지 없습니다. 특히, 후발 의약품의 시장경쟁이 아니라 행정기관이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취한 약가 조정으로 인해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후발 제약사에게 물은 사례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특허법원 판결은 서울고등법원 판결과 달리 특허 제도  취지와 목적을 잘못 이해하여 특허권자를 지나치게 과보호하는 결론을 내렸고, 후발 의약품의 출시를 부당하게 지연시켜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인 건강권을 침해할 우려가 큽니다.

만약 특허법원의 판결처럼 특허권 침해로 인해 특허권자가 입은 손해를 후발 제약사가 배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적 지위도 의심스러운 독점적 통상실시권자를 내세워 이 자가 약가 인하로 입었다고 주장하는 손해까지 후발 제약사에게 배상하도록 한다면, 후발 의약품의 조기 출시를 유도하려는 어떠한 정책도 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무효 가능성이 높은 특허라 하더라도 법원의 최종 판결로 무효가 확정되기 전까지 후발 의약품은 시장에 들어오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향은 제네릭 의약품에만 미치지 않고 특허 의약품과 이용·저촉 관계에 있는 개량 신약에도 미칠 것입니다. 또한 특허 도전을 장려하여 제1심에서 유리한 심판결을 받은 후발 의약품의 출시를 장려하려는 현행 약사법의 취지는 달성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무효 가능성이 있는 경우 특허권자는 소송 절차를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고 의약품 접근을 촉진하는 방식이 아닌 특허법의 적용이라는 점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허법 제128조는 민법 제760조의 특칙입니다. 그런데, 특허법 제128조 제1항은 특허권자로 하여금 침해로 인하여 입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법리를 재확인하는 데에 그치고 있습니다. 나머지 제2항부터 제7항까지 손해액 산정에 관한 개별 규정들은 모두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서 손해액 산정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의 손해를 산정하는 여러 방법을 제시한 것이 특허법 제128조이지, 특허법 제128조 각 항이 서로 다른 종류의 청구권을 신설하려는 취지가 아닙니다. 불법행위 손해배상의 특칙 규정인 특허법 제128조는 제6항에서 합리적 실시료를 최저로 정한 것이 특징이지만, 이 역시 특허권자의 합리적 보호를 위한 것이지 새로운 청구권을 창설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따라서 침해 행위가 여럿 있는 경우 각각의 행위에 대해 서로 다른 손해액 산정 방법을 적용할 수는 있지만, 하나의 침해 행위에 대해 여러 손해액을 중복하여 산정하는 것은 우리 법률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한미약품과 명인제약의 특허권 침해 행위는 복수가 아니라 각각 하나이고, 특허권자인 일라이 릴리는 그 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에 대해 배상을 이미 받았습니다. 따라서 한국릴리에 대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또 인정하는 것은 중복·과잉 배상으로 허용될 수 없으므로, 이를 잘못 판단한 특허법원 판결을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릴리를 독점적 통상실시권자로 볼 수 있는지

하지만 위 3가지는 한국릴리가 일라이 릴리와의 관계에서 일라이 릴리의 제품들에 대한 독점 수입업자이자 독점 판매업자라는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일라이 릴리가 보유한 특허권의 통상실시권자라는 점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특허법원이 근거로 삼은 위 3가지 중 유일하게 특허와 관련된 것은 일라이 릴리의 법률 고문의 진술 중 “이 사건 특허권의 존속기간 동안 한국 내에서 올란자핀의 유일한 수입자이자 독점적 판매자였다”라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사건 특허권의 존속기간 동안”이란 말은 특정 기간을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고, 특허발명에 대한 실시권을 부여했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 사건 특허의 존속기간 만료 이후에도 한국릴리가 원고 제품에 대한 독점수입, 판매업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면, 위 진술 중 “이 사건 특허권의 존속기간 동안”이란 수식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수식어로, 한국릴리의 법적 지위에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릴리가 원고 제품을 이 사건 특허 만료일인 2011. 4. 24. 이후에도 계속 독점 수입·판매하고 있다는 점으로 뒷받침됩니다. 또한, 원고 회사들 사이에 1995년에 체결되었다고 하는 ‘공급 및 유통에 관한 기본계약’에 따라 한국릴리는 원고들 제품의 국내 순매출 27% 상당의 로열티(특허법원 판결문은 이를 “실시료”라고 함)를 받았는데, 만약 한국릴리가 특허권의 실시권자였다면, 이 27%의 로열티는 이 사건 특허권의 존속기간 만료일인 2011. 4. 24. 이후 크게 줄었어야 합니다.

이처럼 한국릴리가 누리는 이익은 특허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의약품을 생산하는 일라이 릴리로부터 해당 의약품을 독점 공급받아 국내에서 판매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이므로, 한국릴리는 일라이 릴리가 제3자에게도 의약품을 공급하였을 때 계약 위반을 주장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일라이 릴리와 무관하게 명인제약이나 한미약품이 후발 의약품을 시판한다고 하여 한국릴리가 일라이 릴리와의 계약상 누리는 법적 지위가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독점 판매업자로서 한국릴리는 일라이 릴리에게 자신 이외의 다른 자에게 물품을 공급하지 말라고 요구할 채권적 권리만 인정되고, 제3자가 독자적으로 제조한 의약품을 시판한다고 하여 한국릴리의 채권이 침해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