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관련 지식의 공동관리풀 WHO 결의문 채택

결의문 내용

세계보건기구는 제73차 총회에서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지식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풀을 승인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유엔 기구의 결의문은 크게 ‘서문'(PP: Preamble Part)과 ‘실행문’ 또는 ‘집행문'(OP: Operative Part)로 구성되는데, 이번 코로나19 대응 결의문에는 모두 9개의 실행문이 들어 있다. 실행문 1~6까지는 누가 실행해야 하는지 특정하지 않은 반면, 실행문 7은 회원국, 실행문 8은 국제기구 및 관련 당사자, 실행문 9는 WHO 사무총장을 대상으로 특정했다.

지식 공동관리 풀과 관련된 내용은 실행문 4, 실행문 8.2, 실행문 9.8이다. 먼저, 실행문 4는 2가지를 촉구한다. (1)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 기술과 제품의 평등한 이용(access)과 공정한 분배, (2) 이 평등한 이용과 공정한 배분에 대한 부당한 장벽의 신속한 제거. 결국 실행문 4는 의료 기술의 이용 관점에 입각한 결의라 할 수 있다. 의료 기술의 평등한 이용과 공정한 배분에 대한 장벽을 없애는 방법의 하나로 결의문은 ‘도하 선언문’과 ‘트립스 협정’을 예로 들었다. ‘도하 선언문’은 세계무역기구(WTO)의 2001년 공중보건과 트립스 협정의 관계에 대한 선언문을 말하는데, 각국은 특허발명의 강제실시를 어떤 경우에 발동할지 결정할 주권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1] 즉, 이번 결의문은 의료 기술에 특허권이 걸려 의료 기술의 이용에 장애가 생기면 강제실시를 통해 신속하게 해소할 것을 회원국에게 촉구한 것이다.

OP4 Calls for the universal, timely and equitable access to and fair distribution of all quality, safe, efficacious and affordable essential health technologies and products including their components and precursors required in the response to the COVID-19 pandemic as a global priority, and the urgent removal of unjustified obstacles thereto; consistent with the provisions of relevant international treaties including the provisions of the TRIPS agreement and the flexibilities as confirmed by the Doha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

다음으로 국제기구와 관련 당사자를 상대로 한 실행문 8.2는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 기술의 ‘생산’과 ‘이용’ 양면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먼저, 생산 측면에서 국제기구와 관련 당사자들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양질의 감당할 수준의 진단, 처치, 의약 및 백신의 개발, 검사, 생산 증대를 위해 모든 국면에서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경쟁이 아니라 공동 협력(work collaboratively)을 통한 생산은 곧바로 ‘진단, 처치, 의약 및 백신’을 적기에, 평등하고 감당가능하게 이용(timely, equitable and affordable access)을 촉진하려는 목적과 연결된다. 특허풀은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이 때문에 이번 결의문이 특허 풀에 관한 결의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특허 풀은 지식 공동관리 풀의 일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결의문을 특허 풀로 좁게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결의문은 ‘이미 있는(existing)’ 특허 풀로 특정했는데, ‘이미 있는’ 특허 풀이란 결핵, 말라리아, C형 간염처럼 저소득 국가에서 주로 발생하는 ‘소외 질병'(neglected disease)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의약품 특허 풀'(MPP: Medicines Patent Pool)을 말한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소외 질병에 대해 특허는 잔뜩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의약품은 생산하지 않고 있었다. MPP는 이들이 갖고 있는 특허를 제네릭 제약사(가령, 인도 제약사)가 쓸 수 있도록 특허 이용허락(라이선스) 계약을 중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 왔다. 현재 MPP는 주로 최저개발국과 저소득 국가, 그리고 일부 중진국만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한 의료 기술의 이용을 추구하는 WHO의 이번 결의안이 MPP만 지칭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OP8.2 Work collaboratively at all levels to develop, test, and scale-up production of safe, effective, quality, affordable diagnostics, therapeutics, medicines and vaccines for the COVID-19 response, including, existing mechanisms for voluntary pooling and licensing of patents to facilitate timely, equitable and affordable access to them, consistent with the provisions of relevant international treaties including the provisions of the TRIPS agreement and the flexibilities as confirmed by the Doha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

 

마지막으로, WHO 사무총장을 상대로 한  실행문 9.8은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진단, 처치, 의약 및 백신의 개발, 제조 및 배포 역량을 배가하기 위한 국제조약상의 선택지를 찾아서 제공하라고 주문했다. 이 선택지에는 앞에서 언급한 도하 선언문에서 확인한 사안이 포함되며, 선택지를 제공하는 과정에는 WHO가 이미 출범시킨 Access to COVID-19 Tools (ACT) Accelerator[2] EU가 주도한 Pledging Campaign[3] 포함된다고 하여 이번 공동관리 풀과의 연관성을 확인했다.

OP9.8 Rapidly, and noting OP2 of RES/74/274 and in consultation with Member States, and with inputs from relevant international organizations civil society, and the private sector, as appropriate, identify and provide options that respect the provisions of relevant international treaties, including the provisions of the TRIPS agreement and the flexibilities as confirmed by the Doha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 to be used in scaling up development, manufacturing and distribution capacities needed for transparent equitable and timely access to quality, safe, affordable and efficacious diagnostics, therapeutics, medicines, and vaccines for the COVID-19 response taking into account existing mechanisms, tools, and initiatives, such as the Access to COVID-19 Tools (ACT) accelerator, and relevant pledging appeals, such as “The Coronavirus Global Response” pledging campaign, for the consideration of the Governing Bodies

결의문의 의미와 평가

결의문의 문구만 놓고 보면, 코스타리카 정부의 제안에서 크게 후퇴했고 EU의 결의안 초초안(zero draft)에서도 후퇴했다. 하지만 공동관리 풀이란 표현 자체를 빼려고 했던 미국의 반대를 돌파했다는 점에서 보건의료 기술과 지식의 협력 모델이 국제적 승인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결의문은 지재권의 혁신 이론 또는 특허 제도의 발명 유인론(incentive to invention) 또는 연구개발 투자 유인론(incentive to R&D investment)이 잘못 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발명 유인론은 기술지식을 창작하고 생산하려면 많은 비용이 드는데, 이러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지식은 생산되지 않을 것이므로 특허제도를 통해 지식 생산자에게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면, 이를 통해 창작자 개인은 자신이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이득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기술지식의 생산이 늘어나서 사회적 부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마땅한 치료제나 백신도 없고, 진단 장비와 심지어 의료인의 개인보호장구도 부족하다. 지재권의 혁신 이론 또는 특허제도의 발명 유인론에 따르면,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는 지재권을 통한 보상의 크기를 키워 필요한 기술의 개발을 빨리 유인해야 한다. 예컨대, 코로나19 대응 기술을 개발하면 신속하게 특허권을 부여하고, 현행 20년이 아니라 40년의 장기간의 권리행사를 보장하며, 침해자에게는 특허권자가 입은 실제 손해의 10배까지 배상하도록 하거나 현행 벌금 1억원이 아니라 100억원까지 물리는 것이다.[4] 하지만 이런 수단을 쓰자는 얘기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 이번 결의안에 반대 의견을 냈던 미국, 영국, 스위스, 심지어 다국적 제약사들도 보상의 크기를 키워서 필요한 기술을 유인하자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이번 WHO 결의문은 정확히 반대 방향을 제시한다. 지재권, 특허권이란 배타적 시장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협력 방식을 통해 코로나19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지식은 본래 공공재다.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지식은 글로벌 공공재다. 지재권은 공공재를 사유재로 만드는 제도적 장치다. 따라서 특허권과 같은 지재권의 부여는 그대로 유지한채 지재권의 이용허락(라이선스) 방식은 이번 풀에서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그리고 기술과 지식의 생산 방식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지재권을 통해 시장 독점 이윤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과 분리된 기술혁신 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런 전환은 WHO의 지식 풀이 성공하면 좀 더 일찍 현실화될 수 있다. WHO 지식 풀이 성공하려면, 풀의 크기를 충분히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는 이번 결의안에 이름만 올리는 데에 그치지 말고, 지식 풀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코로나를 틈타 원격의료를 밀어부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진단, 방역 기술을 전 세계에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의 사유화를 국가와 공공기관의 의무로 만들어 놓은 지식재산기본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 지식재산기본법은 특허청이 조직이기주의로 국내에 이식해 놓은 일본의 법률이다. 이런 법에 기본법이란 꼬리표를 달아놓고, “지식재산”이란 용어를 버젓이 통용하는 한국 사회도 이번 WHO의 지식 풀을 보면서 반성할 지점이 많다. 먼저 특허장사꾼으로 전락한 특허청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발명을 장려하랬더니 특허를 장려하고, 기술을 독점할 자격이 있는지 엄정히 심사해야 할 자신의 역할은 내팽개치고, 특허권자를 고객이라고 부르면서 대놓고 특허장사에 앞장서고 있으니, 행정기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고 공정한 특허심사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경과

이번 결의문이 나오게 된 경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1월 30일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선언(declaration of a 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on novel Coronavirus (2019-nCoV)

📀 유엔총회 결의문 A/RES/74/270 on “Global solidarity to fight the coronavirus disease 2019 (COVID-19)” and A/RES/74/274 on “International cooperation to ensure global access to medicines, vaccines and medical equipment to face COVID-19”

📀 3월 23일: 코스타리카 정부 공식 제안(코로나19 진단, 예방, 통제 및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에 관한 현재 및 미래의 권리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풀을 WHO에 두자, 우선 WHO가 회원국 등과 MOU를 맺고 구체적인 조건은 추후 결정)

📀 3월 27일: 코스타리카 제안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전문가 서한

📀 4월 6일 WHO 사무총장 언론 브리핑

📀 EU, 네덜란드, 영국 지지

📀 4월 15일: EU, WHA 73 코로나19 대응결의안 초초안(zero draft) WHO에 제출

📀 약 2주 반 가량 회원국들 논의. 여러 나라의 수정안, 사무총장의 타협안 등이 있었음.

📀 이를 종합한 최종본은 5월 12일 20시 30분에 회원국에 회람(이 최종본에 한국은 없었음).

📀 침묵 절차(silence procedure) 진행 (마감: 5월 14일 정오)

📀  결의안 초안 총회 회부(한국은 이 때 제안자로 참여한 듯)

📀 5월 15일 WHO 사무총장, 코스타리카, 칠레 대통령 언론 브리핑

 

세계보건기구 제73차 총회 코로나19 대응 결의문 https://apps.who.int/gb/ebwha/pdf_files/WHA73/A73_CONF1Rev1-en.pdf

  1. 도하 선언문은 제목에 ‘지적재산권’, ‘특허권’, ‘유행병’, ‘필수의약품’, ‘의약품의 가격’과 같은 한정된 의미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도하 선언문이 특수한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고, 트립스 협정 전체와 공중의 건강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의 선언임을 천명했다. 도하 선언문은 개도국의 입장을 대부분 반영하였는데, 이를 두고 ‘정치적 선언‘이라고들 하는 이유는 뉴라운드 출범이 1999년 시애틀에 이어 또 다시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진국의 후퇴와, 에이즈로 죽어가는 자국민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개도국의 절박한 입장 사이의 정치적인 타협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도하 선언문은 강제실시의 해석이나 적용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강제실시를 부여할 권리와 그 요건을 결정할 주권이 각 회원국에 있음을 천명하면서 특허권보다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에 더 무게를 두었다. 이것은 그 동안 강제실시의 시행과 관련하여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의 불평등했던 현실과, 강제실시를 적용하려는 개도국의 시도를 선진국 등에서 무역보복과 같은 압력을 행사해 저지하여 왔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인데, 선언문 5(c)항은 특별히 “각 회원국은 어떠한 것이 국가 긴급사태나 기타 극도의 위기 상황을 구성하는지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HIV/AIDS, 결핵, 말라리아, 기타 유행병과 같은 공중의 건강이 위기에 처한 상황은 국가의 비상사태나 극도의 위기상황을 의미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도하 선언의 논의 과정에서, 미국은 트립스 협정 제31(b)조는 제27조 제1항의 특허권에 부속되는 권리이고, 국가 긴급사태는 HIV/AIDS에만 적용된다는 입장을 유지하였는데, 도하 각료선언 이후 이러한 미국의 주장이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도하 각료선언문에서 ‘공중의 건강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 ‘국가 긴급사태나 기타 극도의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고 선언한 것은, 어느 회원국이 국가 긴급사태를 선포한 경우 이를 둘러싼 분쟁에서 국가 긴급 사태의 규명 자체에 대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각료 선언문 5(c)항에서 ‘각 회원국(Each Member)’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국가 긴급사태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회원국의 개입 없이 어느 회원국의 주권 재량에 따라 독자적으로 가능함을 천명하였다.

  2. 가난하든 부유하든 모두에게 평등한 치료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코로나19 대응 기술과 지식의 개발을 가속화하려고 세계보건기구가 4월 24일 출범시킨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설명하면서 WHO 사무총장은 “코로나19는 연대를 통해서만 종식시킬 수 있다. 국가와 민간이 협력하고 과학과 연구성과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3. 3월 26일 G20 합의의 후속 조치로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등을 개발하기 위해 초기 자금 75억 유로를 목표로 한다.

  4. 특허 침해자에게 10배 배상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특허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홍의락 의원이 발의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