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2020년 4월 6일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모든 지식과 기술에 관한 권리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풀(pool)을 만들자는 제안을 수용했다. 이 제안은 코스타리카 정부가 3월 23일 WHO에 공식 제안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권리는 코로나19 치료제 특허에 국한되지 않고, 코로나19의 진단, 예방, 통제 및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에 관한 모든 권리를 말한다. 치료제 특허는 물론 디자인, 임상시험 성적 자료(자료 독점권), 노하우, 셀라인, 저작권, 진단 기기나 장비, 의약, 백신 생산에 사용되는 청사진(blueprint)에 관한 권리까지 포함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모든 나라에서 이들 권리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합리적이고 지불가능한 조건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각국과 맺자는 코스타리카 제안을 구체화하기로 하였다. 아직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치료 효과가 있는 약물이 나오면 특허나 자료독점권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특허나 저작권으로 기술과 지식을 독점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오픈 데이터(open data), 오픈 과학(open science), 공동 협력(open collaboration)을 지향하는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국가 차원을 지원을 해 오고 있다. 가령, 보건복지부는 신종감염병 및 필수예방접종 백신 개발을 위한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까지 연구단계 전주기에 걸쳐 10년간 2,151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고(보건복지부 2020. 4. 2.자 보도자료), 추가경정예산 중 40억원을 국가 바이러스·감염병 연구소 설립에 쓰기로 한 바 있다. 국립보건연구원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착수하여 최근 백신 후보물질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기술은 WHO가 추진하는 공동관리 풀에 태우고,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기술들을 이 풀에서 가져다 쓸 수 있으면, 코로나19 퇴치를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16개국 특허청장들은 코로나19 관련 특허를 빨리 받게 하자는 협소한 논의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올바른 방향을 WHO가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WHO의 행보와는 별개로 전 세계 45개국의 연구자, 학자, 공익단체들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공개서한을 보내 지적재산권이 코로나19 대응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다(이 서한은 아직 서명을 받고 있다).
WHO가 수용한 공동관리 풀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 경쟁에서 이긴 자가 다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시장 모델이 아니라 협력 모델이다. 이 협력 모델이 성공하려면 배신자가 더 이익을 보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막아야 한다.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배신자에게 도덕적 비난을 가하거나 협력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익이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얼마전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렘데시비르’에 대해 희귀 의약품 지정 신청을 했다가(이게 승인되면 장기간의 자료 독점권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 비난을 받고 신청을 취하한 것이 전자의 좋은 예다. 애비브가 ‘칼레트라’ 특허를 포기한 것은 후자 때문일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특허 강제실시를 하거나 지재권 제도에 들어 있는 권리 제한과 예외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협력하지 않고 지재권으로 독점 이윤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이걸로 차단할 수 있다. 배신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확 줄어든다. 이미 여러 나라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강제실시 제도를 정비하거나(독일, 캐나다), 이미 강제실시를 발동하는(이스라엘) 등.
네덜란드 정부가 WHO의 공동관리 풀을 지지하는 입장을 냈다. 아쉬운 점은 네덜란드 보건부 장관은 이 풀을 특허풀(patent pool)로 좁게 이해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