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과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국민 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이념과 체제를 말한다. 이를 위한 중요한 요소가 바로 권력분립이다. 우리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사법권은 법원에 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삼권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특허 제도에는 이러한 삼권분립의 원칙이 달성되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국회에서 다루는 특허법 개정안과 상표법 개정안, 그리고 특허청이 거의 매년 준비하는 특허법 개정안을 보면 이런 생각이 굳어진다.

한마디로 말해 특허제도에 관한한 행정조직인 특허청이 삼권을 다 장악하고 있다. 특허행정을 특허청이 독점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바다. 사법권의 일부인 특허·상표 관련 행정소송 1심 기능을 특허청 산하의 특허심판원이 담당하는 것도 특허 심판의 특수성을 고려한 과거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지만, 이젠 바꿔야 한다. 특허법원을 만든지 20년이 넘었고, 그 동안 행정소송만 담당하던 것에서 벗어나 2016년부터는 침해소송 항소심을 특허법원이 전담하고 있다. 그만큼 법원의 전문성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특허심판원을 계속 존치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입법 기능을 특허청이 독점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우리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하면서도 정부의 법률안 제안권을 인정하고 있다. 제헌 헌법부터 인정된 이 정부의 법률안 제안권은 대부분의 법률안을 정부가 발의하는 폐해를 낳았다. 이것이 역전된 때가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부터다. 이때부터 의원 입법이 정부 입법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특허제도는 아직까지도 예외다.

87년 체제 이후만 보면, (2014년 6월 기준으로) 특허법 개정안은 모두 39건(위원회 대안 포함)이 발의되었는데, 정부 발의는 38%인 15건에 지나지 않지만, 국회에서 가결된 건 수는 정부안이 67%인 14건으로 의원안 가결 7건의 2배에 달한다. 상표법은 더 심한데, 전체 발의안 22건 중 정부안이 14건으로 64%나 되고, 가결된 법안 수는 정부안이 무려 72%에 달한다(제헌국회부터 1986년까지 발의된 특허법 개정안은 모두 9건인데,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안이었다).

통계치에서만 드러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개정안의 내용이다. 의원안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절차적이거나 사소한 내용이다. 가령 19대 국회에서 제안된 강창일 의원대표발의안은 금치산·한정치산자 제도를 없앤 민법 개정 사항을 특허법에 반영하려는 것이고, 이현재 의원대표발의안은 영세중소기업의 특허료 감면을 개정 취지로 하고 있다. 결국 특허제도의 실질적인 내용은 모두 특허청이 준비한 정부안을 통해 구축되고 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송기헌 의원안(소프트웨어 특허 강화를 골자로 하는 특허법 개정안)은 의원 발의 형식이지만 특허청의 청탁으로 발의된 ‘청부 입법’이다.

물론 모든 잘못을 특허청에만 돌릴 수는 없다. 헌법이 보장한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국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법률 개정안을 연례행사하듯 발의하는 특허청도 책임이 크다. 우리 헌법에서 정부의 법률안 제안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부의 법률안 제안은 행정작용에 필요한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런데 특허청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입법 기능을 독점한지 오래되었다.

특허청의 행정작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의 특허법 개정안이 특허청의 손을 거쳐 나오는 것이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특허청은 “특허·실용신안·디자인 및 상표에 관한 사무와 이에 대한 심사·심판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만든 행정조직이다. 이런 사무와 무관한 특허법 개정안을 특허청이 추진하는 것도 문제지만, 추진 논리가 더 문제다. 특허청의 논리는 하나다. 바로 특허권 강화다. 특허청은 특허권 강화가 곧 선(善)이라는 신념을 종교에 가까울 정도로 신봉하고 있다. 어느 기술분야에서 특허권을 강화하는 것이 기술혁신에 기여하는지, 그러한 정책이 다른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검증해야 하지만, 특허청에게 이런 분석과 검증은 필요없는 듯 보인다.

2019년 10월 특허청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다룬 내용을 보자. 특허 침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배상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가 법 개정의 골자다. 특허 행정과 무관한 손해액 산정 특례를 특허청이 나서 입법에까지 관여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 특허청이 산하기관을 통해 준비하고 있는 간접침해 범위 확대안도 마찬가지다. 간접침해 인정 범위는 정부조직법에서 정한 특허청의 기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허청이 아무 거리낌없이 이런 개정안을 준비한다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삼권분립의 훼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허청이 할 일은 엄정한 심사다. 누가 기술을 독점하려고 할 때 독점할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가리는 일을 하라고 만든 행정조직이 바로 특허청이다. 그런데 특허청이 심사 사무는 뒷전에 두고(실제로 특허청의 예산에서 심사에 드는 예산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엉뚱한 제도개선만 고민한다면 특허청을 둔 법률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국회가 바로 서야 하겠지만, 특허청도 제도의 공공성과 권력분립, 민주주의에 대한 실천적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법률개정안을 내야만 성과를 인정받는 특허청 내부 조직은 없애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제도 개선안은 특허청 심사관들이 심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특허청이 피규제자에게 포획되어 특허제도를 편향된 이념의 실현 도구로 삼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적 개혁안이다. 이렇게 해야 특허청을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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