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S 투자 분쟁: 소송이 아닌 사적분쟁해결 절차

ISDS가 소송이나 재판과 같은 공적 분쟁해결 절차가 아니라 사적분쟁 해결 절차라는 점은 여러 차례 지적하였으나(2015년 경향신문 기고 등), 여전히 소송으로 표현한 언론기사가 많다. 론스타 투자분쟁은 우리나라와 벨기에가 체결한 투자협정에 따른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론스타 이후의 분쟁도 모두 ISDS 방식이다. 그런데 언론이 이 분쟁 사건을 “소송”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심지어 론스타 중쟁절차가 시작되자 외교부는 이를 “재판”이라고까지 한 적이 있다.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엉터리 번역이다. ISDS의 본질을 놓치는 오류이거나 의도적인 감추기다.

ISDS의 정식 명칭은 “투자자 국가 분쟁 해결(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이고 약어는 ISD가 아니라 ISDS다(ISD란 표기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ISDS에 따른 투자자와 국가 간의 분쟁은 소송 절차가 아니라 중재 절차로 해결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중재”란 “제3자가 분쟁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ISDS는 사적 분쟁 해결 방식이고, 소송을 통한 분쟁 해결은 일종의 공적기구(법원)를 통한 해결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중재는 법원과 달리 민간인이 결론을 내며, 중재인을 분쟁 당사자들이 정한다. 3명의 중재인 중 2명은 중재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각각 선정하고, 나머지 수석 중재인은 당사자가 합의로 정하거나 합의가 되지 않으면 중재기관에서 정한다. 그리고 중재인은 어떤 사건에서는 중재판정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건에서는 투자자를 대리하는 변호사 역할도 한다. 론스타 사건에서 우리 정부가 정한 중재인은 프랑스 국적의 대학 교수(브리짓 스턴)이고 론스타 측 중재인은 미국 국적의 변호사(찰스 브라우어)이며, 양측이 수석 중재인으로 합의하는 사람은 영국 국적의 변호사(조니 비더)였다가 얼마 전에 캐나다 전 대법관 ‘윌리엄 비니’로 교체되었다.

소송에서 재판부를 구성하는 판사 한 명을 원고가 정하고, 다른 판사는 피고가 정한다면, 그것도 다른 사건에서 원고 변호사였던 자가 재판부를 구성한다면, 그 재판부가 공정한 판결을 하리라고 누가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법부는 국민이 위임한 일종의 주권위임 형식의 권력을 갖지만, 중재판정부는 이런 권력도 없고 공정하고 독립적인 판단을 위한 신분보장도 되지 않는다. 중재는 원래 상인들이 서로 간의 분쟁을 자기들끼리 해결하려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 상인과 독일 상인이 영국에서 장사를 하다가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까? 프랑스 법정이나 독일, 영국 법정 어디를 ㅐ해도 당사자들이 다 만족하기 어렵다. 법원을 통한 분쟁 해결은 비용도 많이 들고 3심이라 시간도 오래 걸리니 자기들이 정한 사적 기구를 통한 분쟁 해결 즉, 상인법이 ISDS의 뿌리다. 이처럼 상인 개인들 간의 분쟁을 사법제도 바깥에서 중재하는 상인법 체제를 국제법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 ISDS이고, 중재 결정에 강제력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 간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또 하나, 중재는 사적분쟁해결 방식이므로 당사자가 미리 동의한 경우에만 분쟁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소송은 다르다. 원고가 소장을 내기 전에 피고에게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미리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말이 되겠나? 피고의 동의가 없다고 법원에서 소장을 반려하면? 위헌이다. 재판받을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재에는 이런 게 없다. 문제는 BIT나 FTA에서 사전동의가 없어도 투자자는 국가를 분쟁에 끌고 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점이다. 초기의 ISDS는 투자자와 투자유치국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은 국내법에 따라 해결하고, “서로 원한다면” 사적분쟁해결 즉, 중재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국가의 사전 동의권을 박탈한 최초의 FTA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고 론스타 투자분쟁의 근거인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도 NAFTA 방식을 따른다. ISDS를 투자자-국가소송제로 번역하면, 이러한 ISDS의 문제점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왜 우리나라 정부의 행정행위를 프랑스, 미국, 영국의 민간인 3명이 재단하는가? 이런 사적분쟁해결 절차에 우리나라 고위 공무원들이 줄줄이 참여하는 상황, 그것도 국민세금으로 출장비까지 받아가면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상황이 터무니없는 혈세 낭비란 점도 드러나지 않는다.

ISDS가 사적 분쟁 해결 방식이라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은 유럽연합에서 나왔다. 2018년 Achmea 사건에서 유럽법원(European Court of Justice)은 유럽연합 역내국간의 투자 협정에 들어 있는 ISDS는 유럽법 위반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별도의 조약을 만들어 역내 투자협정을 폐기하는 수순에 들어갔다.[1] Achmea 판결 전에 유럽연합이 미국과 협상 중인 FTA(범대서양 무역투자협정, TTIP: 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에 ISDS가 논의되자 독일을 비롯한 일부 회원국들과 시민사회단체에서 강력한 비판이 잇따랐다. 그러자 투자 분쟁에 관한 대외 협상 권한을 새로 갖게된[2]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ISDS를 사적 분쟁해결 방식이 아니라 공적인 방식으로 바꾸는 국제투자법원을 만들자는 새로운 제안을 2015년에 내놓게 된다. 그리고 유엔 국제상거래위원회(UNCITRAL)에도 제안하였고, ISDS 개혁 작업반(Working Group III: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Reform)에서 국제투자법원 설립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사적분쟁 해결 방식인 ISDS를 ‘소송’, ‘재판’으로 부르면, UNCITRAL의 제도 개선 논의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더 큰 문제는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ISDS의 본질적인 문제를 감추는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가 생긴다. 소송 대신 중재나 투자분쟁으로 부르면 충분하다.

  1. EU Member States sign an agreement for the termination of intra-EU bilateral investment treaties, 5 May 2020, https://ec.europa.eu/info/publication/200505-bilateral-investment-treaties-agreement_en
  2. 이러한 권한은 한-EU FTA 협상 당시에는 없었고, 그래서 한-EU FTA에는 ISDS가 들어가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