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문화향유권과 과학·문화권

국내에서는 과학·문화권이란 용어 대신에 정보문화향유권이란 용어가 사용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정보인권특별보고서도 정보문화향유권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제 정보문화향유권이란 용어는 버리고 과학·문화권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가 되었다.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정보문화향유권은 국제인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제대로 포섭하지 못한다. 둘째, 국제적으로 정보문화향유권이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으며, 과학·문화권(right to science and culture)가 사용되고 있다.

과학·문화권이란 용어는 국내에서는 아직 통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국제적으로는 2009년 Shaver & Sganga의 논문[1]에서 처음 사용된 후 지금은 유엔인권기구와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과학·문화권은 정보문화 향유권에 사회권 규약 제15조 제1항(c) 및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2항의 이른바 ‘저자 조항’(Author Clause)까지 포함하는, 정보문화향유권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과학·문화권 또는 정보문화향유권에 대해 국내에서는 여전히 형성 중인 권리라고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2000년부터 학계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그 개념이 상당히 잡혀 있다. 가령 ‘저자 조항’에 대해서는 2005년에 일반논평 제17호[2]가 나왔고,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에 대해서는 2009년 일반논평 제21호[3]를 통해 권위있는 해석이 내려졌다. 특히, 지재권의 국제화 또는 지재권의 무역중심성과의 관계에서 과학·문화권의 논의는 상당히 성숙해 있고, 유엔 문화권 특별보고관은 2014년과 2015년 저작권 제도와 특허 제도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포함한 보고서[4]를 내 놓기까지 했다.

과학·문화권은 5가지 유형의 인권(civil, political,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중 문화권으로 분류하는데, 과학·문화권은 다른 인권과 마찬가지로 다면적인 권리이다. 과학·문화권은 개인의 자기개발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참여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공공의 선을 위한 과학의 진보를 장려하는 제도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5] 자아실현과 같은 자유권과도 관련이 있다.[6] 과학·문화권은 앞에서 설명한 3가지 권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견해인데,[7] 현행 헌법 제22조 제1항을 고려하여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포함하는 4가지 권리로 개념화하거나,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와 과학의 진보로부터 이익을 누릴 권리에 내포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과학·문화권의 장점

정보문화 향유권에 비해 과학·문화권은 첫째, 문화권 외에 과학권까지 포괄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지재권의 내재적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창작적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분배에 관한 대안적 모델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 동안 정보문화 향유권을 지재권과의 관계에서 파악할 때, 지재권은 인권 개념에는 포섭되지 않는 외생 변수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인권과 지재권의 충돌(가령, 특허권과 건강권, 표현의 자유와 저작권, 프라이버시와 지재권의 집행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권이 지재권 외부에서 작용하여 지재권의 무분별한 강화를 저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이에 비해 과학·문화권은 지재권을 내부 변수로 취급함으로써 인권으로서의 지재권 또는 기본권으로서의 지재권이란 새로운 개념을 끌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현행 무역중심주의 지재권 제도에서는 도출하기 어려운 지재권의 내재적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요컨대, 기본권으로서의 지재권과 실정법으로서의 지재권의 경계를 정할 수 있다. 이 경계는 그 동안 현행 헌법 하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국제인권규범 상의 과학·문화권

(1) 세계인권선언 제27조

Article 27
① Everyone has the right freely to participate in the cultural life of the community, to enjoy the arts and to share in scientific advancement and its benefits.
② Everyone has the right to the protection of the moral and material interests resulting from any scientific, literary or artistic production of which he is the author.
 

제27조
①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②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작한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산물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2) 사회권 규약 제15조

Article 15
1. The States Parties to the present Covenant recognize the right of everyone:
(a) To take part in cultural life;
(b) To enjoy the benefits of scientific progress and its applications;
(c) To benefit from the protection of the moral and material interests resulting from any scientific, literary or artistic production of which he is the author.
2. The steps to be taken by the States Parties to the present Covenant to achieve the full realization of this right shall include those necessary for the conservation, the development and the diffusion of science and culture.
3. The States Parties to the present Covenant undertake to respect the freedom indispensable for scientific research and creative activity.
4. The States Parties to the present Covenant recognize the benefits to be derived from the encouragement and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contacts and co-operation in the scientific and cultural fields.

제15조
1.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의 다음 권리를 인정한다.
(a)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b)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c)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
2. 이 규약의 당사국이 그러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에는 과학과 문화의 보존, 발전 및 보급에 필요한 제반조치가 포함된다.
3. 이 규약의 당사국은 과학적 연구와 창조적 활동에 필수 불가결한 자유를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
4. 이 규약의 당사국은 국제적 접촉의 장려와 발전 및 과학과 문화 분야에서의 협력으로부터 이익이 초래됨을 인정한다.

[1] Lea Shaver & Caterina Sganga (2009) The right to take part in cultural life: On copyright and human rights, Wisconsin International Law Journal 27(4) (이하 “Shaver & Sganga, 2010”). 이들에 따르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미주인권협약 추가의정서(American Declaration and the Protocol of San Salvador)은 과학·문화권에 해당하는 조항을 “Right to the Benefits of Culture”라는 약어로 부르고, 일부 학자들은 “right to culture” 또는 “access to knowledge”란 용어로 표현하는데, 지난 수십년 동안 자유권 규약 제27조는 문화권(cultural rights)이란 용어를 소수자나 토착민들이 자신의 언어와 전통을 보존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들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용어로 과학·문화권(right to science and culture)을 제안했다고 한다(Ibid, 641-642면의 각주 13).

[2]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Thirty-fifth session, Geneva, 7-25 November 2005 (E/C.12/GC/17), GENERAL COMMENT No. 17 (2005) “The right of everyone to benefit from the protection of the moral and material interests resulting from any scientific, literary or artistic production of which he or she is the author (article 15, paragraph 1 (c), of the Covenant)”.

[3] UN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General Comment No. 21: Right of Everyone to Take Part in Cultural Life (Art. 15, Para. 1 (a), of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para. 37, UN Doc. E/C.12/GC/21 (2009).

[4] Report of the Special Rapporteur in the field of cultural rights, Farida Shaheed (2014) Copyright policy and the right to science and culture (A/HRC/28/57) (이하 “UN Copyright Report 2014”), Report of the Special Rapporteur in the field of cultural rights, Farida Shaheed (2015) Patent policy and the right to science and culture (A/70/279) (이하 “UN Patent Report 2015”).

[5] Plomer, A. (2015) Patents, human rights and access to science, Edward Elgar Publishing, p, 34.

[6] Stamatopoulou, E. (2008) The right to take part in cultural life, UN CESCR E/C.12/40/9(이하 “Stamatopoulou, 2008”), p. 37.

[7] UN Copyright Report of 2014,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