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관한 인권 – 유엔 사회권이사회의 일반논평 25호

‘소외된 인권’ 또는 ‘잊혀진 인권’으로 불릴만한 ‘과학문화권'(right to science and culture)에 대한 유엔 인권기구의 최종 해석지침이 나왔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CESCR: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는 2020년 4월 7일 일반논평 25호를 발표하여 사회권규약 제15조의 ‘과학권'(right to science)에 관한 국제인권기준을 제시했다.

‘소외된 인권’답게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내 인권단체 어느 곳도 주목하지 않는 이번 일반논평 25호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지금 가장 시의적절한 국제인권 지침이다. 왜냐하면,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과학권(right to science)의 핵심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권기준을 일반논평 25호가 내놓았기 때문이다.

사회권규약 제15조의 과학문화권[1]은 크게 3가지 권리로 이루어져 있다. (1) 저자(author)의 권리, (2) 문화권, (3) 과학권.

‘저자의 권리’는 사회권규약 제15조 제1(c)항에 규정된 “자신이 저자인 과학적·문학적·예술적 창작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말한다. 혹자는 이 조항을 국제인권법의 지적재산권 조항이라고 하지만, 사회권위원회를 비롯한 유엔 인권기구는 ‘저자의 권리’는 현행 지재권 제도 하의 지적재산권과 본질적으로 다르고, 양자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의 권리’에 대해 사회권 이사회는 지금부터 15년 전인 2005년에 일반논평 17호를 통해 국제인권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General Comment No. 17 – The Right of Everyone to Benefit from the Protection of the Moral and Material Interests Resulting from Any Scientific, Literary or Artistic Production of which He or She is the Author (article 15, paragraph 1 (c), of the Covenant), General Comment No. 17 (2005), U.N. ESCOR, 35th Sess., U.N. Doc. E/C.12/GC/17 (12 January 2006).

‘문화권’은 사회권규약 제15조 제1(a)항에 규정된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말하며, 사회권위원회의 2009년 일반논평 21호가 발표되었다(General comment No. 21 – Right of everyone to take part in cultural life (art. 15, para. 1 (a), of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U.N. ESCOR, 43rd Sess., U.N. Doc. E/C.12/GC/21 (21 December 2009).

‘과학권’은 사회권규약 제15조 제1(b)항에 규정된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말하는데, 그 동안 일반논평이 나오지 않아 국제인권규범에 명시된 권리 중 가장 소외된 권리로 불렸다. 지금까지 ‘과학권’에 관한 가장 권위있는 해석지침은 유네스코가 2007년부터 전문가 회의를 매년 개최하여 2009년에 발표한 베니스 선언문이다(UNESCO, Venice Statement on the Right to Enjoy the Benefits of Scientific Progress and its Applications (2009)).

이번에 발표된 일반논평 25호는 베니스 선언문의 내용을 상당부분 재확인했는데, 사회권규약 제15조 제1(b)항 뿐만 아니라 제15조 제2, 3, 4항에 관한 국제인권기준도 함께 제시함으로써 사회권규약 제15조 해석론의 완성을 시도했다(일반논평 25호의 단락 3).

사회권 규약 제15조

1.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의 다음 권리를 인정한다.
(a)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b)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c)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

2. 이 규약의 당사국이 그러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에는 과학과 문화의 보존, 발전 및 보급에 필요한 제반조치가 포함된다.

3. 이 규약의 당사국은 과학적 연구와 창조적 활동에 필수 불가결한 자유를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

4. 이 규약의 당사국은 국제적 접촉의 장려와 발전 및 과학과 문화 분야에서의 협력으로부터 이익이 초래됨을 인정한다.

사회권규약 제15조 제1(b)항에서 그 동안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던 부분이 ‘과학(의 진보)의 응용'(its application)이었는데, 일반논평 25호는 응용이란 사람들의 필요나 특정 관심사에 과학을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하며, 과학의 용용에는 과학적 지식으로부터 생긴 기술 예컨대, 의료적 응용, 산업적 응용, 농업적 응용, 정보통신 기술이 포함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단락 7).

Applications refer to the particular implementation of science to the specific concerns and needs of the population. Applied science also include the technology deriving from scientific knowledge, such as the medical applications, the industrial or agricultural applications, or the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그리고 ‘과학권’은 과학의 진보와 응용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수동적 권리로 제한되지 않고, 과학적 진보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일반논평 25호는 참여할 권리까지 포함된 의미의 약칭으로 ‘RPEBSPA‘를 사용하고 있다(단락 11 이하, RPEBSPA는 right to participate and to enjoy the benefits from scientific progress and its applications를 줄인 말이다).

이처럼 참여가 과학권의 내용에 포함되면, 과학권은 수동적 권리가 아니라 적극적 권리가 된다. 즉, 낙수 효과(trickle-down)에 의해 과학적 진보로 인한 혜택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동적 권리가 아니라[2] 가령 인격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의약품의 공급을 요구할 권리도 과학권에 포함된다.[3] 또한 과학과 그것의 활용에 관한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보장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과학권이 개인에게 과학적 진보의 결과물에 대한 적극적인 청구권을 인정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논평 25호는 기존의 일반논평과 달리 과학권과 지재권의 관계에 대해 자세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줄만하다. 일반논평 25호는 과학권과 지재권은 긍적적 관계와 부정적 관계를 모두 가진다고 하면서, 지재권이 과학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3가지 요소를 지적했다(단락 60).

  1. 연구개발 자금지원의 왜곡(distortion in R&D funding): 지재권은 여러 연구개발 장려책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재권이 연구개발 자금지원을 왜곡하는 문제는 해결하려면 다른 장려책 예컨대, 시장을 통한 보상이 아닌 방식이 필요.
  2. 과학적 정보의 억제(restriction of scientific information)
  3. 과학적 진보의 혜택에 접근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obstacles in accessing the benefits of scientific progress)

일반논평 25호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코로나19 위기극복에 인권이란 낡았지만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반논평 25호는 소위 ‘4차산업혁명’으로 포장된 기술 유토피아적 시각을 인권이란 렌즈로 교정할 이론적, 실천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1. 국내에서는 정보문화향유권이란 잘못된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2. Helfer, L. R. & Austin, G. W., Human rights and intellectual property: Mapping the global interfa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p. 237.
  3. Morsink, J.,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Origins and intent,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1999, p. 219.